캐나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Riceboy Sleeps) 리뷰: 잔잔한 이민 이야기 속 영화적 장치들에 대한 해석

프코프코 2023. 9. 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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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네이버 영화 스틸컷

 

 

1990년 캐나다, 그때 그곳의 동현(Dong-Hyun)은 알지 못했다. 학교 화장실 쓰레기통에 몰래 버렸던 엄마(So-young)의 정성스러운 도시락 속 김밥이 33년이 지난 2023년에는 미국 트레이더스조 매장들에서 매진 행렬을 벌이고 있을 것을.

2023년 4월에 캐나다 전역에서 개봉한 영화 <Riceboy Sleeps>는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온 소영과 동현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캐나다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한국인 모자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범아시아적인 감정적 서사의 힘과 공감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9월 초, 2023 밴쿠버 타이완 페스티벌의 영화상영 프로그램에도 상영작으로 포함되어 개인적으로 해당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그런 연유로 타이완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어 상영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1990년 어느 날은 동현과 소영에게 유독 힘들었다. 정학 처분을 받고 우는 동현에게 교장실을 박차고 나온 소영은 동현이에게 남자는 태어나서 태어났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렇게 세 번 우는 거라며 울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더욱 관습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자는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조국을 빼앗겼을 때 이렇게 세 번만 운다고. 미혼모와 미혼모의 자식이 살기에는 아직은 척박했던 조국 한국을 동현을 위해 등질 수밖에 없었던 소영에게는 조국의 의미가 빠져 있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또 한편으로는 누간가의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처럼 사용된 이야기의 변용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1999년의 동현에게는 캐나다가 그리고 학교가 여전히 쉽지 않다. 자신과 가족의 뿌리를 찾아보라는 학교 과제와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그 빈자리를 조용히 천천히 스며드는 소영의 남자친구. 모든 게 혼란스럽다. 그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일탈과 방종을 도피처 삼던 동현은 끊임없는 몸과 마음의 생채기를 얻게 된다. 

동현의 방 벽지는 예나 지금이나 범선으로 가득 차 있다. 황금의 제국들을 찾아다니며 대륙들 사이 사이 바다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던 초국가적 존재로서 캐나다와 같은 신대륙을 탐험하며, 개척자들을 내려다 놓고 발 내딛게 해주었던 원동력이 바로 범선이었다. 캐나다와 한국 사이 그 어디가를 떠다녔을 수많은 범선들 중 하나가 바로 동현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From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인생의 과제처럼 동현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캐나다를 떠나 한국에 도착하게 된 소영과 동현을 담은 스크린에서는 화면비가 변한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스크린이 좌우로 더 넓게 나오는데, 캐나다에서의 시선과 마음이 조금 더 갑갑하게 조여지고 좁아져 있었다면, 한국에서는 누군가의 시선이 그리고 세상이 넓어졌음을 의미하려고 한다. 

한국에 당도한 두 사람의 서사에서도 한국의 관습적 표현이나 설화의 변용이 나타난다. 캐나다에서 소영은 고려장을 이야기하는데--국내외 학계에서는 효행 설화로만 치부하고 실제로 행해지지 않은 풍습으로 보기도 하지만--, 아들의 잘못과 깨우침에 주안점이 주어지는 한국 버전보다는 산에 함께 오르는 부분 그리고 부모는 버려지는 것을 알더라도 자식을 더 걱정하는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공간적 연출을 미리 기획하고 의미 부여를 염두에 두고 변용을 조금 시켜서 차용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의 고향에서 함께 또는 업어서 올라가는 산이 가족 누군가를 죽도록 버려두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을 기리고 모시는 산소가 있던 곳이었고, 올라가는 곳이 누군가의 죽음이 있어야만 하는 곳이라는 점이 공통점이긴 하지만, 부모 자식 간의 따스한 포옹, 화해, 그리고 이해가 존재하는 곳이기도 한 점은 영화가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영화 내내 캐나다에서의 소영은 엄마로서 동현의 밥을 챙겨준다. 한국에서는 아버지 가족들이 소영과 동현의 밥을 챙겨준다. 단 둘이 둘러앉아 먹던 식탁이 아니라 여럿이서 바닥에 밥상을 가둔데 두고 둘러앉아 먹는 밥이다. '라이스보이'가 캐나다와 학교에서는 차별적인 의미가 가득했다면, 집과 한국에서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식구'라는 의미에 가깝게 존재한다. 특히 벼농사를 짓는 할아버지를 보면 정성과 노력으로 재배되는 쌀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From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 <Riceboy Sleeps>의 시작이 일출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면, 끝은 일몰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이런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잔상처럼 남게 되는 영화 제목 때문인지 일출과 일몰 장면 속 산등성이 어딘가에서 가족이라는 나무에 등을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 잠든 동현이가 그려지는 그런 영화.

- 경운기를 타고 이동하는 모자처럼 천천히 느리지만 화해와 이해의 목적지로 가는 영화.

- 뿌리를 찾으라는 학교 수행 과제 같은 영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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